– 2025 상반기 ⭐️ 그래봐야 몇 개월 된다고, 이번 상반기 역시 정말 많은 계획과 생각의 변화가 있었고, 그 와중 새로운 계획과 생각들도 많이 수립됐다. 늘 그렇듯 많은 몰랐던 것들을 보고 경험했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도 느껴야 했다. 매번 이전보다 더 엉망진창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알지 못 하는 것들 투성이일 것이다. 그 잡다하고 두서없는 시간들을 파헤쳐 그래도 한 번 기록해 봄직한 것들만을 꺼내 최대한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히거나 혹은 그냥 날것 그대로인 상태로 이 전시장(?)에 세웠다. ㅎ~ㅎ 같이 돌아볼 사람이 있다면 반갑겠어요 <한 해를 시작하며…> 기후 위기부터 온갖 사회적 갈등과 차별, 혐오 – 점점 더 악해져만 간다고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가끔은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을지 죽어간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나의 성장이나 기쁨이라는 명목하에 하는 선택과 행위들이 지구를 더 아프게 하는 데 일조하고, 내가 함부로 누리는 편리함에 의해 어떤 생명들은 죽어가고, 그 편리함을 경계한다면서도 애용하고. 그저 모순덩이리 세상 속 모순덩어리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에 괴로운 회의감을 느끼다가도 다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고. 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결국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 좀 더 오랫동안 유효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다 한동안은 당장 눈 앞의 현실에 허덕이느라 그런 사유들을 모두 뒤로 미뤄버린다. 그러다 또 다시 그런 생각에 잠기기를 몇 번 반복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나는 ‘새로운 해’라고 불리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제 ‘행복’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가끔 찾아와 점처럼 찍히고 가는 아이라는 걸 알기에, 그것을 어떠한 목적으로 추구하진 않는다. 연초와 연말의 거창함도,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동안 중요한 줄 알았던 것들 중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대신 중요한 줄 몰랐지만 점점 더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혹시 인생은 그냥 허영을 깨우쳐가는 과정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보통 이런 늘어놓음의 끝엔 뭔가 멋있는 말로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뱉고 싶은 질문들만 가득할 뿐 어떤 명쾌함도 없다. 그냥 이 모든 것 자체에 정답이 없는 거겠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만 딱 하나 확실한 건, 절대 건조해지고 싶지만은 않다는 것. 계속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분노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또 관찰하고 발견하고 사랑하고 싶다. 적어도 희망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한 냉랭한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 분명하게 다짐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다.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거라고 믿는다. ࿔ ࿔ ࿔ ࿔ ࿔ 하지만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 제법 당차게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희망이란 것에 희망을 걸기 정말 어려운 나날들이었다.(-ing) 모든 것이 과도기에 서있는 오늘, 크고 작은 부정의들은 자신만만하게 지구 곳곳에서 자신의 구역을 넓혀가고, 기존에 질서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의심 받기 시작한 이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비열한 설렘을 느끼는 반면 누군가에겐 당장 내일을 향한 설렘마저 사치가 되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는 끝났다고 한다. 무력한 건 둘째 치고, 좋든 싫든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명백한 황혼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분은 참 묘했다. 늘 애(愛)보다는 증(憎)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본 곳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부디 잘 됐으면 하는 인정하기 싫은 애틋함이 있었다. (떠날 수 없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러운 바람이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올라앉아있는 모든 구름에서 내려온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떨까? 하지만 여기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가 당연시되어온 시기와 이것이 불러온 모든 당연한 것들이 전부 과도의 심판대에 올라있는 지금, Q: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며 무엇을 느껴야 할까? ࿔ ࿔ ࿔ ࿔ ࿔ A: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라도 늘 변함없이 확실한 게 하나 있다고 했잖아 <3월> 정말 ‘냉혹’ 그 자체였던 하루가 있었다. 불친절의 쓴맛과 권위의 혹독함과 그 날따라 유난히 거센 바람과 낯선 동네에서 죽어버린 휴대폰과 빽빽하게 늘어선 적응 안 되는 건물들과 불필요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며 불쾌한 감각을 남기는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닥쳐왔을 때, 그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아닌 듯한 스스로를 마주봤다. 당연히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거울에 비친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더 친절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모르는 사이에 좀 더 강해진 걸까? 원래 생각보다 꽤 강했던 것일 수도? 어쨌든 그날 밤은 그 반가운 의지를 가득 끌어안았다. 지난 겨울 방콕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망고를 산 날이었다. 볼 일이 끝났으니 무심코 돌아서려던 순간에 들었던 “Happy new year” 한 마디와 그에 동반되었던 활짝 핀 미소가, 살아가다 분명 무언가가 되어줄 거라고 예상했었다. 다만 이렇게 불친절로 점철된 곳에서 역으로 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대개 불친절에는 불친절로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냉혹함을 뚫고 익숙하지 않을 환경에서 싹 틔울 용기를 내준 이 기꺼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지. 𓈒𓏸𓂃 방콕에서 마주친 깔맞춤 순간들 𓂃 𓈒♡ 📖 나는 단지 오늘의 내 업무를 할 뿐인데 어떤 이가 굶느냐 굶지 않느냐, 취직하느냐 마느냐, 뭔가를 이해하느냐 그 정보를 모른 채 계속 허우적대느냐 하는 차이가 날 때, 그 업무의 중요성에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물론 그렇게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날은 거의 없다. 대체로 나는 데스크 앞에 있는 얼굴일 뿐이거나 책장에 책을 꽂는 한 쌍의 손일 뿐이며, 그래서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의 존재에 중심축 역할을 하는 드문 순간을 까딱하다간 놓쳐버린다. 내 직업에 환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그래도 몇몇 드문 날이면 나는 내가 치료사나 카운슬러 혹은 선생님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퍼뜩 깨닫게 된다. 그런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 척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 소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이 닥쳤을 때 나는 항상 지나치다 싶게 노력할 것이다. 설사 그 사람이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 딴사람 눈에는 영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굉장히 무서우면서도, 진짜 솔직히 터놓고 말한다면, 신날 때도 없지 않다. 동시에 분노를 못 이길 때도 있고, 또 완전 우울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혹여나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면 명심하기를. 도서관 문 앞에 그 분노를 내려놓고 퇴근할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멍하니 흘려보내지 말 것. 앨리 모건, 『사서 일기』, 문학동네(2023) 中 “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멍하니 흘려보내지 말 것.” ✦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다시 생각나는 2년 전의 날이 있다. 종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 탔는데, 정류장에서의 출발이 지연되는 중이었다. 앞쪽에서는 카드에 문제가 있는지 탑승하지 못 하고 있는 두 사람과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지친 듯한 기사님이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결국 그 분들은 차에서 내려 배차 간격이 매우 긴 그 버스의 다음 편을 기다리거나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던 나는 그때서야 무언가 쿵 하며 정신이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서 아무도 도움 내지 작은 관심이라도 내비치고자 움직이지 않았고, 나도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며 ‘언젠가 출발하겠거니’ 하고 5분을 보낸 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도착까지 나머지 1시간 가량을 후회 속에서 보내야 했다.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살다보면 종종 있을만한 상황 아닌가?’ ‘움직이는 게 의무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