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상반기 ⭐️
그래봐야 몇 개월 된다고, 이번 상반기 역시 정말 많은 계획과 생각의 변화가 있었고, 그 와중 새로운 계획과 생각들도 많이 수립됐다. 늘 그렇듯 많은 몰랐던 것들을 보고 경험했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도 느껴야 했다. 매번 이전보다 더 엉망진창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알지 못 하는 것들 투성이일 것이다.
그 잡다하고 두서없는 시간들을 파헤쳐 그래도 한 번 기록해 봄직한 것들만을 꺼내 최대한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히거나 혹은 그냥 날것 그대로인 상태로 이 전시장(?)에 세웠다.
ㅎ~ㅎ 같이 돌아볼 사람이 있다면 반갑겠어요
<한 해를 시작하며…>
기후 위기부터 온갖 사회적 갈등과 차별, 혐오 – 점점 더 악해져만 간다고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가끔은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을지 죽어간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나의 성장이나 기쁨이라는 명목하에 하는 선택과 행위들이 지구를 더 아프게 하는 데 일조하고, 내가 함부로 누리는 편리함에 의해 어떤 생명들은 죽어가고, 그 편리함을 경계한다면서도 애용하고. 그저 모순덩이리 세상 속 모순덩어리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에 괴로운 회의감을 느끼다가도 다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고. 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결국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 좀 더 오랫동안 유효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다 한동안은 당장 눈 앞의 현실에 허덕이느라 그런 사유들을 모두 뒤로 미뤄버린다. 그러다 또 다시 그런 생각에 잠기기를 몇 번 반복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나는 ‘새로운 해’라고 불리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제 ‘행복’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가끔 찾아와 점처럼 찍히고 가는 아이라는 걸 알기에, 그것을 어떠한 목적으로 추구하진 않는다. 연초와 연말의 거창함도,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동안 중요한 줄 알았던 것들 중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대신 중요한 줄 몰랐지만 점점 더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혹시 인생은 그냥 허영을 깨우쳐가는 과정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보통 이런 늘어놓음의 끝엔 뭔가 멋있는 말로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뱉고 싶은 질문들만 가득할 뿐 어떤 명쾌함도 없다. 그냥 이 모든 것 자체에 정답이 없는 거겠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만 딱 하나 확실한 건, 절대 건조해지고 싶지만은 않다는 것. 계속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분노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또 관찰하고 발견하고 사랑하고 싶다. 적어도 희망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한 냉랭한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 분명하게 다짐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다.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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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 제법 당차게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희망이란 것에 희망을 걸기 정말 어려운 나날들이었다.(-ing)
모든 것이 과도기에 서있는 오늘, 크고 작은 부정의들은 자신만만하게 지구 곳곳에서 자신의 구역을 넓혀가고, 기존에 질서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의심 받기 시작한 이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비열한 설렘을 느끼는 반면 누군가에겐 당장 내일을 향한 설렘마저 사치가 되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는 끝났다고 한다.
무력한 건 둘째 치고, 좋든 싫든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명백한 황혼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분은 참 묘했다.
늘 애(愛)보다는 증(憎)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본 곳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부디 잘 됐으면 하는 인정하기 싫은 애틋함이 있었다. (떠날 수 없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러운 바람이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올라앉아있는 모든 구름에서 내려온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떨까?
하지만 여기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가 당연시되어온 시기와 이것이 불러온 모든 당연한 것들이 전부 과도의 심판대에 올라있는 지금,
Q: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며 무엇을 느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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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라도 늘 변함없이 확실한 게 하나 있다고 했잖아
<3월>
정말 ‘냉혹’ 그 자체였던 하루가 있었다.
불친절의 쓴맛과 권위의 혹독함과 그 날따라 유난히 거센 바람과 낯선 동네에서 죽어버린 휴대폰과 빽빽하게 늘어선 적응 안 되는 건물들과 불필요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며 불쾌한 감각을 남기는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닥쳐왔을 때, 그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아닌 듯한 스스로를 마주봤다. 당연히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거울에 비친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더 친절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모르는 사이에 좀 더 강해진 걸까? 원래 생각보다 꽤 강했던 것일 수도? 어쨌든 그날 밤은 그 반가운 의지를 가득 끌어안았다.
지난 겨울 방콕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망고를 산 날이었다. 볼 일이 끝났으니 무심코 돌아서려던 순간에 들었던 “Happy new year” 한 마디와 그에 동반되었던 활짝 핀 미소가, 살아가다 분명 무언가가 되어줄 거라고 예상했었다. 다만 이렇게 불친절로 점철된 곳에서 역으로 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대개 불친절에는 불친절로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냉혹함을 뚫고 익숙하지 않을 환경에서 싹 틔울 용기를 내준 이 기꺼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지.
📖 나는 단지 오늘의 내 업무를 할 뿐인데 어떤 이가 굶느냐 굶지 않느냐, 취직하느냐 마느냐, 뭔가를 이해하느냐 그 정보를 모른 채 계속 허우적대느냐 하는 차이가 날 때, 그 업무의 중요성에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물론 그렇게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날은 거의 없다. 대체로 나는 데스크 앞에 있는 얼굴일 뿐이거나 책장에 책을 꽂는 한 쌍의 손일 뿐이며, 그래서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의 존재에 중심축 역할을 하는 드문 순간을 까딱하다간 놓쳐버린다.
내 직업에 환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그래도 몇몇 드문 날이면 나는 내가 치료사나 카운슬러 혹은 선생님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퍼뜩 깨닫게 된다. 그런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 척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 소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이 닥쳤을 때 나는 항상 지나치다 싶게 노력할 것이다. 설사 그 사람이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 딴사람 눈에는 영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굉장히 무서우면서도, 진짜 솔직히 터놓고 말한다면, 신날 때도 없지 않다. 동시에 분노를 못 이길 때도 있고, 또 완전 우울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혹여나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면 명심하기를. 도서관 문 앞에 그 분노를 내려놓고 퇴근할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멍하니 흘려보내지 말 것.
앨리 모건, 『사서 일기』, 문학동네(2023) 中
“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멍하니 흘려보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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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다시 생각나는 2년 전의 날이 있다. 종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 탔는데, 정류장에서의 출발이 지연되는 중이었다. 앞쪽에서는 카드에 문제가 있는지 탑승하지 못 하고 있는 두 사람과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지친 듯한 기사님이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결국 그 분들은 차에서 내려 배차 간격이 매우 긴 그 버스의 다음 편을 기다리거나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던 나는 그때서야 무언가 쿵 하며 정신이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서 아무도 도움 내지 작은 관심이라도 내비치고자 움직이지 않았고, 나도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며 ‘언젠가 출발하겠거니’ 하고 5분을 보낸 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도착까지 나머지 1시간 가량을 후회 속에서 보내야 했다.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살다보면 종종 있을만한 상황 아닌가?’
‘움직이는 게 의무적인 것도 아닌데’
‘괜히 너무 진지한가 싶기도 해’
와 같은 생각들이 스스로 나름의 합리성을 부여하며 밀고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실보다, 그 이유였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서, 멍 때리다가.
친절하는 것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조금이라도 더’ 친절해지는 건, 그런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로, 인간은 너무나 쉽고 간편하게 냉소와 혐오를 둘러멜 수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정말 한 순간에도 말이다.
선과 친절에 요구되는 시끄럽고 지속적인 노력을 비웃듯이 조용하고 빠르게 스며드는 나쁜 마음을,
어느 날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이 삐쭉 튀어나온 나쁜 마음을 발견할 때면, 처음엔 그저 당황스럽고 창피하다가 이내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언제까지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겠지.
그러니 계속해서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부끄러움은 분명히 마주하고 이별해야 하는 것이다. 자꾸 실패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도 괜찮다 그게 인간이니까. 다시 정신 차리고 마주하고 이별하길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악스럽고 비겁한 혐오자가 되는 건 진짜 한순간이라니까!
내 앞의 겨우 몇 걸음 남짓 되는 시야에만 의존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각각의 오만한 범주 속에 밀어넣고 스스로마저 그 좁은 상자에 가둬버리는 건 그다지 어렵고 드문 일이 아니라고. 아주 쉽고 늘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라고.
그러니 기억하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돌에 그대로 맞아 넘어지는 존재가 바로 내 앞에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돌에 그대로 맞아 넘어지는 존재가 절망적인 순간에 유일하게 내 손을 잡아줄 손일 수도 있고, 어느 날 내가 그 존재가 되어 과거에 던진 돌에 고스란히 맞을 수도 있다.
물론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드는 일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여유 한 톨 가지기조차 버거운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러면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나의 말 한 마디와 행동, 태도 하나가 누군가에겐 하루를 좀 더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부터, 어쩌면 인생의 구원과 같은 순간까지도 될 수 있다. 그로 인해 더 친절해지고 싶다는 반가운 의지를 얻을 수도 있다. 비록 그 순간 당장은 아닐지라도, 살아가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문득 무언가 되어줄 수 있다 방콕에서 들었던 인사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뭐가 되어도 좋지 않은가? 사람은 결국 사소한 말 한 마디로 살아간다는 건 우리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자꾸 잊어버리게 될 뿐. 그래도 아직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 희망을 더 걸어보고 싶은 게 진심인 듯 하다. 특히나 이렇게 과도기라는 배에 함께 타고 있을 때라면 ﹏𓊝﹏𓂁
내가 한 번 비치는 공감과 미소에 넘어져있던 몸을 일으켜보려는 존재가 바로 내 앞에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한 번 비친 공감과 미소에 일어섰던 존재가 절망적인 순간에 걸어와 내 손을 잡아줄 수도 있고, 어느 날 내가 그 존재가 되어 과거에 남긴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고스란히 용기를 전해 받을 수도 있다.
📖 마음이 현실의 인과에 개입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을 갖는 일이 무의미할 거라 생각하진 않게 되었어요. 되돌릴 수 없는 것에 한 줌 추모를 얹는 게 부질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하릴없이 바스러지고 말겠죠.
이하진, 『마지막 증명』, 안전가옥(202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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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잔잔하게 꿈을 꿔야지
<4월>
올해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나를-찾아-떠나자 프로젝트(=휴학이라는 뜻)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나름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기도 했다.
사실 돌아오기 전에 꽤나 거창한 오열의 이별식을 했었다. 내 꿈들이랑….. 무지개가 되겠다는 허황된 욕심에 소비한 시간과 노력은 이쯤이면 충분하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보자고, ‘진짜’ 인생을 살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하지만 🤨 이 표정이 🥺 이렇게 녹아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들을 잊어…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허황된 욕심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
다만 이제는 꼭 일곱가지 색을 모두 가진 무지개가 되지 않아도 된다. 꼭 선명한 색이 아니어도 된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추구여야 할 필요도 없으며, 세상 그 무엇도 내 인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충실하면서 나에게 와줄 색들을 능동적으로 기다려야지. 고맙게 나에게 와주었을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한쪽 눈을 뜨고 간절하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어찌 됐든 계속해서 잔잔하게 꿈을 꿔야지.
📖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정대건, 『GV빌런 고태경』, 은행나무(2020)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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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별했던 친구 중 한 명과 재회했다 🎶 음악은 내 인생의 요소들 중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인 만큼 늘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담아낸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작년에 조금 깔짝거렸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역시 혼자서는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웠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를 발견해서 수업을 듣게 됐다! 문제는 집에서 연습할 건반이 필요하다는 거였는데, 진짜 럭키한 타이밍에 당근에서 무료 나눔을 발견한 덕에…! 냅다 버스 타고 1시간을 달려가 낑낑대며 모셔온 길은 굳이 두 번씩 경험하고 싶진 않다 ◠ ‿ ◠
어디서 들었는데 원래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생고생시킨다고 한다.
또 새로운 친구도 생겼는데, 학교에서 웹툰 강좌를 연다고 해서 고민에 1초도 날리지 않고 신청한 결과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 이런 걸 배워보겠어?!”
수많은 것들 중 내가 잘 하는 뚜렷한 무언가가 하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또 그걸 남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는 건 더 더 멋진 것 같다고… 첫 수업을 듣는 내내 생각했다.
다채로움과 뚜렷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그치만 무엇보다 어려운 건 역시나 불안을 견디는 것
계속해서 꿈을 꿀 거라고 마음을 다지긴 했지만, 그 ‘꿈’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언제까지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될지에 대한 불안은 나의 여전한 룸메이트이다. 매일 같이 살다가 한동안 안 들어오길래 어디 놀러 갔나 싶으면 보란 듯이 다시 옆에 와있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그럴 것이듯, 나에게도 불안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우선 불안은 모든 걸 도구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친구는 아니다. 진심을 가지고 시작한 일도 불안이 덮쳐오면 곧바로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에서 이런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소중한 이들과의 시간 위에 낭비라는 경고 딱지가 붙는데 바보 같이 그게 속임수인 줄 구분도 못 한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그래서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어줄 것인지를 기준으로 메긴 점수표가 붙어있다. 여태껏 한 번도 불안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꼭 이런 사이여야 할까? 룸메이트랑 대치해서 좋을 게 뭐가 있는데.
불안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변수와 불확실성을, 어쩌면 지금만 겪을 수 있을 이 고뇌를, 피할 수 없다면 그냥.. 울지 않고 그대로 다 느끼자. 적어도 훗날 돌아봤을 때 불안에 허덕이는 모습으로 점철되어 있는 사진첩을 돌려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분명히 언젠가는, 예쁘게 완성한 그림 위에 무언가를 자꾸 덧그리며 형상을 잃어가는 작품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는 오늘 또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리운 날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성과를 떠올려보자면, 이렇게 불안을 안고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 소위 말하는 – 짜침을 견디는 데 상당한 내공이 생겼다는 것? 이제는 초보자가 되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 어떤 단계를 밟으며 성장해갈지 알기 때문이다.
원래 누구나 이렇게 서투른 자신을 견디고 창피함을 무릅쓰면서 나아가는 거니까. 그런 처음이 없다면 영원히 아무것도 없는 거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좀 더 견디고 무릅써보고 싶다 •˕ •マ.ᐟ
그런 의미에서 갑작스럽지만 이 자리를 빌려 저의 짜침(모르고 틀리고 헛소리하는 모든 행위들)을 함께 인내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어른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도 후에 더 어른이 돼서 이런 방랑자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최선을 다해서 모든 부끄러울 수 있는 것들을 같이 견뎌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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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지금의 순간들을 조금 더 담으려고 하지 않을까?
<5월>
개인적으로 나는 학교 축제에 꾸준히 😑 이런 에티듀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ㅎㅎ, 같이 사는 언니가 우리 학교에 공연 오는 가수를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정말 뜬금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아니 근데 글쎄 말이지…….
너무 좋았따. ㅋㅋ
처음 막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어떤 무대의 끝자락이었는데, 훅 들어오는 그 에너지가 뭐랄까 되게 좋은 의미로 벅찼다? 비도 딱 적당하게 뿌리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결국엔 생쥐 됐지만)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나는 지금의 순간들을 조금 더 담으려고 하지 않을까? 바쁘고 피곤하고 딱히 관심이 없을 순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시 멈춰서 고개를 드니까 좋잖아! 어쨌든 지금 서있는 여기에서 만나는 것들은 딱 한 번 뿐인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자”, “건조한 눈으로 세상을, 사회를 바라보지 말자”와 같은 말은 그렇게 되새기려고 하면서 정작 나의 매일에게는 다른 무엇에게보다도 메마른 눈빛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가뭄이 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로. 그리고 대다수의 친구들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뭔가… 슬프다. 나와 내 친구들(그러니까 이 망망대해 같은 삶을 같이 헤엄쳐나가고 있는 너히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정말 진심으로. 원래 ‘행복’이라는 말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 즐겨 쓰지 않는데 지금은 다른 표현이 전혀 안 떠오른다 말 그대로 느낌 그대로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고 또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어
행복은 지속적인 상태가 아니라 가끔 가다 일상에 점처럼 찍히는 짧은 순간일 뿐이라는 재수 없는 사실은 집어치우고 그냥 지금. 당장. 행복해져서 영원히. 죽을 때까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그것뿐이라고~~~~ 이게그렇게어려워야하는거야?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ㅅ ㅏ라ㅇ한다고…..
다들 어디서든 힘 내라고……….!
📖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202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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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는 없는 걸까 근데
<6월>
늘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 돌아보고 싶어질 때쯤 생일이 있다. 올해의 절반 정도 오는 동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연들을 스쳤고, 그 중 멀어지지 않게 붙잡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다. 여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너무 좋고 환경에 변화를 주는 일도 분명 설레지만,
그런데 왜 거기엔 매번 필연적으로 어떤 종료와 이별이 따라야만 하지?
하는 거만한 불만이 있다. 이제 영원할 것 같은, 특별한 것 같았던 모든 함께에도 결국엔 다 비슷한 모습의 멀어짐이 따르고, 처음엔 아쉬울지라도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만남들 속에서 점차 희미해질 감정이라는 걸, 그게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법칙이라는 걸 머리로는 확실히 알겠는데… 마음과 태도는 아직도 구질구질함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지금 내 옆에 앞에 혹은 뒤에 있는 애정하는 사람 물건 행위 시간 순간 전부 꽁꽁 묶어두고 아무도 이 이상 지나갈 수 없다고 ㅠㅠ…! 그렇게 외치고 싶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계속해서 도약할 동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중간에 한 번씩 뒤돌아볼 때면 늘 같은 얼굴로 웃고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꿀 수 있는 것 중 가장 이기적인 꿈을 꿔본다. 현실은 너네가 훨씬 빠르겠지 아닌가 내가 무심해서 매번 뒤늦게 후회하는 건가
“언젠간 헤어질 거라는 걸 알아도 지금의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그걸로 됐다” 라는 건 저 멀리에 있는 너무나 성숙한 무언가로 들릴 뿐이야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는 없는 걸까 근데 과거를 손에 쥔 채로 말이야
어쨌든 중요한 건 나는 아직도 어떻게 지나간 지나가는 지나갈 것들을 건강하게 보내줘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우하하
너도 모른다고 해줘 우리 그냥 다 같이 모르고 다 같이 서투르게 슬퍼하자…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섭섭할 것 같기도 해
앞으로는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겠다.(아는 건 뭐야?) 너무 궁금하다. 매번 변수의 변수를 겪다 보니 가면 갈수록 더 예측이 되지 않는다. 하긴 지금 걷고 있는 길조차도 한참이 지나야 어디였는지 알 수 있다는데 예측이나 계획 같은 게 사실상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다만 어떤 길로 가든 끊임없이 만남과 시작과 이별과 종료가 반복될 거라는 것만은 자명하고 후자의 것들이 여전히 무섭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근데 뭐 어쩌겠어?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결론으로: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충실하면서 나에게 와줄 색들을 능동적으로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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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시작하자마자 무지개를 꽤나 곳곳에서 마주쳐서 기분이 좋다.
모든 존재하는 이들이 지우개 따위 대신 형형색색의 색연필을 들고 자신을 그리는 날이 오길!
✐ᝰ
♡
༚
༚
༚
“어째서 또 반이나 와버린 거냐고”에 대한 의견 2개
민정아 너는 정말 멋지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야
우리가 연락을 안하고 못 보고 지낸 사이 정말 믓찐 언냐가 되어가고 있엇네ㅠㅠ🥹🫶🏻
앞으로의 삶에서도 민조미가 바라는대로 계획하는대로 흘러갓으면 좋겟다! 그래서 난 너가 정말 행복했우면 좋겟오!!!!! 무지갯빛으로 가득 채워진 민졍이를 응원해💚
민정이의 앞으로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할게
누구보다 더 힘낼 수 있도록 ..
한달동안 하고 싶었던 것 느끼고 싶었던 것 다 하고 곧 만나자
너가 내 친구여서 너무 좋아 ~